다다이즘과 실존주의, 전쟁 이후 인간의 갈피 잃은 자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재앙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근본부터 흔들었습니다. 다다이즘은 이 비이성적인 현실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자 해체의 언어였습니다. 실존주의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 불안을 성찰하는 철학이었습니다. 1. 다다이즘의 탄생, 전쟁이 낳은 무의미의 미학 다다이즘은 1916년 취리히의 한 예술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단순한 예술 형식의 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파괴 속에서 인간 이성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온몸으로 체험한 예술가들의 분노와 허무의 외침이었다. 전통적인 예술 언어로는 이 비이성적인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모든 형식을 부정하고, 기존의 규칙을 조롱하며, 언어와 이미지의 파편을 통해 ‘무의미’를 표현했다. 다다는 그 자체로 의미 없는 단어였으며, 그 의미 없음이야말로 당대 현실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선언이었다. 예술이 더 이상 진리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없을 때, 예술은 오히려 그것을 조롱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다다이즘의 사상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내던진 정신의 저항이었다. 다다이즘은 철저하게 반예술적인 동시에, 가장 절박한 예술이었다. 그것은 의미를 상실한 세계 속에서 오히려 ‘무의미함’을 예술의 언어로 삼은 최초의 운동이었다. 이러한 다다의 출현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기도 했다. 2. 실존주의와 인간 내면의 붕괴 전후 세계,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홀로코스트, 원자폭탄, 전체주의의 만행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저한 회의를 낳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실존주의가 등장했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사상가들은 인간은 본질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고독, 불안, 부...

『빌러비드』로 본 노예제 이후의 삶 – 인간성을 되찾는 문학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노예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흑인들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인간성 회복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며, 인간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 어떤 감정과 기억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문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한다.


1. 『빌러비드』에 나타난 노예제의 잔재와 트라우마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인 『빌러비드』는 노예 해방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진정한 자유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인 세서(Sethe)는 육체적으로는 자유를 얻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억압과 고통에 갇혀 있다. 그녀가 딸을 죽이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노예제의 극단적 비인간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해석되기보다는 당대 흑인 공동체 전체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현실의 집약체로 보아야 한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교차하며 삶을 지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령이 집을 떠돌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바로 그 '기억의 귀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이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과거를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감정의 반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세서가 겪는 죄책감과 자기 혐오의 감정은 단지 개인적인 심리 현상에 그치지 않고, 노예제라는 제도적 억압이 한 인간의 내면까지 어떻게 침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이다. 이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종 문제와 정체성의 문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2.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통의 여정

『빌러비드』는 인간성을 박탈당한 존재가 어떻게 다시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세서와 그녀의 가족,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처와 갈등, 화해와 연대는 이 여정의 다양한 국면을 상징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진정한 삶을 회복하려는 내면의 투쟁으로 읽힌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 회복이 결코 일방적이거나 직선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회복은 후퇴와 반복, 심지어 새로운 고통을 동반하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서의 내면에는 그녀가 겪은 육체적 학대만큼이나 정신적, 감정적 상처가 깊게 새겨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질 수 있다고 믿지 못하며, 주변 인물과의 관계 맺음에서도 끊임없이 두려움과 혼란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녀가 유령과 마주하고, 과거를 이야기하며, 다른 인물들과 감정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치유가 아닌, 다시 인간이 되는 재탄생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회복의 과정은 개인의 서사뿐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진행된다. 폴 디(Paul D)는 세서의 상처를 공감하고 감싸주며,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방식으로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동정이 아니라,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행위로서의 사랑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랑은 노예제라는 제도가 철저히 파괴했던 '관계'와 '연결'을 다시 회복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3. 문학으로서 『빌러비드』의 사회적 역할

『빌러비드』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통해 미국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했던 노예제의 진실과 그 후과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고발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 구조와 정체성의 문제를 조명하는 행위이다. 특히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기존의 서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의 이야기를 복원해낸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문학은 때때로 역사보다 더 강력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빌러비드』는 픽션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은 우리가 평범하게 받아들여온 역사적 사실의 이면을 들춰내고, 우리가 외면했던 고통의 흔적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빌러비드』는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기억을 잊고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모리슨은 특히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주목한다. 노예의 경험, 여성의 고통, 엄마의 절망, 공동체의 침묵 등은 모두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빌러비드』는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문학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실현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의미와 맥락을 성찰하도록 만든다.


결론: 기억, 고통, 그리고 다시 인간이 되는 길

『빌러비드』는 기억과 고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희망이나 감성적 치유가 아닌,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세서의 선택과 그녀의 삶은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다.

노예제라는 제도는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체제였다. 『빌러비드』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어떻게 다시 '나'를 찾아갈 수 있는지를 문학적으로 깊이 있게 보여준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문학은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내는 진실을 되새기게 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묻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빌러비드』는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이며, 토니 모리슨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이며, 모두가 다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을 생각하게 만든다.